[자원활동 수기 공모전] #1, 이석우_나눔 씨앗, 바람을 타다.

‘채우기 위해 땀방울을 흘렸지만 잡히는 것이 없는 세대.’ 요즘 젊은 세대를 일컫는 말이다.
대체 왜 공허한 것일까.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바늘구멍 같은 취업현실, 극한에 이른 경쟁 분위기를 조장하는 현실 속에서 점점 신경질적으로 변하고 이기적인 시야만 커져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어쩌면 잘 어울리는 말이다.
나 또한 젊은 세대의 평범한 멤버로서 점점 공허해지는 분위기를 느끼는 중이었다. 작년여름, ‘혼자’를 의식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늘려가는 나의 모습을 마주했을 때 나는 더 이상 ‘홀로’라는 텅 빈 공간을 만들지 않기로 했다. 내가 선택한 것은 봉사 활동이었다. 나만의 문제를 지니면서도 남들을 기꺼이 도우러 나서고자 한 것은 사실 나에게 위로 해줄 누군가가 필요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정기적으로 할 수 있는 봉사 활동을 찾아보던 중 아름다운가게 10주년 홍보영상을 보았다. 언젠가 인사동에 있는 아름다운 커피에서 더위를 피한 적이 있었는데 이것도 인연인지 싶었다. ‘나눔으로 함께 행복한 아름다운 세상을 꿈꿉니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가게 소개 문구. 확실히 ‘사랑을 잃어버린 세대’ 에게 필요한 가치관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자원 활동을 하기 위해 내가 배치 받은 곳은 서울랜드에 위치한 아름다운가게 재활용 교육센터 였다. 그곳에서 나는 과연 무엇을 나누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나는 일주일에 한번, 토요일을 선택했다. 나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쓰다가 버려진 가죽으로 팔찌를 만들거나 간벌되어 버려지는 나무들을 함께 재활용하는 일을 맡았다.
가죽과 버려진 나무는 주변에서 접할 수 있는 재활용품이라고 하기엔 다소 생소한 것들이다. 특히, 재활용되는 가죽은 어떤 가죽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가게에서 팔찌로 재탄생되는 가죽들은 새것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상태가 양호했다. 간사님께 이야기를 들어보니 가죽 소파 같은 경우 몸이 닿지 않는 부분의 양이 상당해서 버려지더라도 다시 사용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문득, 가죽생산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떠올랐다. 자세하게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다큐멘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가죽을 가공하는 과정에서 꽤 많은 화학약품과 방부제가 사용되고 그것들은 환경파괴의 주범이라는 것이었다. 화학약품과 방부제가 환경에 달갑지 않은 존재라는 사실은 누구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욕심을 누르지 못하고 땅으로부터 많은 것을 빼앗는다.

가게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부모님과 함께 오는 아이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아이들의 모습은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을 강력하게 흡수하는 에너지를 가진 스펀지 같다. 가게에는 꽤 많은 아이들이 오곤 했는데 초등학생밖에 되지 않은 아이들이 벌써부터 ‘스펙’이니 ‘등급’이니 하는 단어들을 입에 오르내리는 광경을 목격하곤 했다.
나에게는 다소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아이들을 접해볼 기회가 없어서 그런지 내 상상 속에 그려지던 아이들과는 괴리감이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벌써부터 누군가의 기대에 부응하는 쪽을 선택하고, 이기적인 것이 당당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이들을 바라보면서 윗세대 아래에서 알게 모르게 엄청난 영향을 받는 아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마음속에 뾰족한 삼각형을 키워가기 전에 그들에게 주변을 사랑하는 감정을 알려주고 싶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마치 중요한 사명감 같은 것이 내면의 깊은 곳에서 끓어올랐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 얘, 네가 지금 만지고 있는 가죽이 재활용 된 사실을 알고 있니? 근데 너에게도 새것처럼 느껴지지?” 

이렇듯 작은 대화의 시작은 나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게 하는 작은 징검다리가 되어주곤 한다.
몇몇 아이들은 만드는 데에만 열중했지만, 신기한 듯 되묻는 아이들도 있었고 정말 재활용된 가죽이냐며 의아해하는 부모님들도 계셨다. 나는 이러한 반응들을 놓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면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고, 우리의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은 우리의 편의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데, 그들의 소중한 생명을 빼앗는 경우가 많다고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내갔다. 다행히 부모님들을 비롯한 아이들의 반응이 좋았고 나의 말을 제법 받아들이는 눈치였다. 일주일에 네 시간밖에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지만, 다음 세대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데 나도 한 몫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름다운가게의 활동천사로 불리기 전까지 내가 생각해왔던 자원 봉사란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을 직접적으로 도와드리거나 정기적인 후원을 실천하는 활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러한 고정관념도 깨지기 시작했다.
넓은 시각으로 본다면 사회의 일원들로서, 각자가 지닌 좋은 생각이나 마음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함께하는 행복한 세상의 문을 열기엔 충분하다.  

활동천사라는 이름으로 재활용교육센터에서 자원 활동을 하는 동안 나도 아이들에게 받은 무언가가 있다.
작년 겨울이었다. 당시 우리 가게에서는 버려진 나무를 재활용하여 나무위에 그림을 그리도록 간단한 체험활동을 제공했다. 엄마 손을 꼭 잡고 한 남자 아이가 가게로 들어왔는데 나무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며 엄마를 졸랐다.  나는 늘 그래왔듯 함부로 베어지는 나무도 사실 우리의 일부라는 것을 아이에게 알려주기 위해 아이 옆에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보따리를 펼치기 시작했다.

“얘, 우리가 생활하는데 나무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나무를 베어가지만,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건 옆에서 숨 쉬어 주는 나무지, 죽은 나무의 흔적이 아닐 거야.”
 
그림을 그리려다 멈칫한 아이가 나에게 되물었다.
 
“그럼 베어져서 버려진 나무나 팔이 잘린 나무는 어떻게 되는 거죠? 나무들은 결국 다 사라지는 건가요?”
 
아이는 나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듯 했다. 지금 당장 베어지고 버려진 나무들에게 다시 생명을 불어 넣을 수는 없지만, 모든 생명이 소중하듯 나무의 생명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세상이라면 분명 지금과는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묵묵히 그림을 그려 나갔고 나는 놀랐다. 아이가 나무위에 붕대그림을 그린 것이다. 버려진 나뭇조각에 붕대그림을 그릴 정도의 순수한 감성을 지닌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어린 시절에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던 감성들이 커가면서 현실의 색깔과 어쩔 수 없이 섞이게 된다. 그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가게에서 자원 활동을 시작한지 꽤 시간이 지난 후에 느낀 것이지만, 그날 아이와 나는 분명히 서로의 마음을 나누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나눔이지만 그 아이는 친구들에게 혹은 일기장이나 그의 기억 속에 그날 나에게서 받은 나눔 씨앗을 잘 뿌릴 것이다. 나 역시 아이에게 받은 순수함의 나눔 씨앗을 무의식중에 잘 키워 나갈 것이다. 이것은 분명 소소하지만 특별한 나눔, 더불어 사는 행복을 만끽한 순간임에 틀림없다.
 
“여러분, 일회용 기저귀가 썩는 시간을 알고 계시나요?”

정답은 백년 이상이다. 뜬금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올해 봄부터 아이들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환경을 지키는 경제이야기 교육에 등장하는 퀴즈 중 하나다. 한번 쓰고 버리면 눈앞에서 당장 사라져버리는 일회용품이 사실은 백년 이상 썩으면서 존재한다. 비단 일회용품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환경과 우리들의 소비활동. 연관성이 크게 없어 보이는 두 개가 사실은 매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쉽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비활동의 방향을 조금만 올바르게 잡으면 환경을 지키는데 크게 이바지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다들 관계가 이어져있다. 자연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자연은 수많은 동물과 식물들의 관계로 형성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공존하는 모든 존재들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교육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누군가에게는 이미 가치를 다해버렸지만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는 물건들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 옷, 신발, 가방, 모자, 인형 등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기에는 몇 번 사용한 적도 없어 보이는 것들 이었다. 자신에게는 고물일 수 있지만 다른 이에게는 충분히 보물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올해 4월, 햇볕이 쨍쨍 내리쬐어 더운 봄이었다.
 
“이거 내 신발하고 똑같은 거잖아!”

교육시간에 필요하여 진열된 기증품을 살펴보던 한 사내아이가 샐쭉해져서 누군가에게 따지듯 혼잣말을 했다. 그러고 보니 아이가 신은 신발은 진열된 그것과 같았다. 언뜻 보기에는 두 개 모두 새것 같았다. 아이는 전에 신던 신발이 해어져서 얼마 전에 몇 만원이나 주고 새로 산거라며 자신의 신발을 가리켰다. 하지만 그의 손끝은 이내 가게에 기증된 신발로 향했다. 심지어 사이즈도 똑같았다. 아이는 볼멘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 괜히 더 많은 돈만 들여서……. 멀쩡한 신발 두 개가 나중에 같이 버려지겠네요. 이런 건 바람직한 소비가 아닌 것 같아요. 아까 배운 내용대로라면 나중에 신발도 썩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거잖아요. 저는 굳이 새로운 걸 살 필요도 없었는데…….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말끝을 흐린 그 아이에게 대답해주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네가 얻은 생각의 씨앗을 잘 간직해두는 거야. 씨앗이 조금씩 자랄 때 쯤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준다면 이 세상에 작은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
 
짧은 순간 느꼈지만, 아이들은 맑고 순수해서 그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어떤 씨앗을 건네주느냐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이 달라지는 것 같았다. 앞에서 얘기했지만, 그들은 마치 물을 쑥쑥 빨아들이는 스펀지처럼 곧바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이었다. 작년 겨울에 다녀갔던 그 아이가 받아간 파릇파릇한 나눔 씨앗을 분명히 이 아이도 받았을 것이다. 그 나눔 씨앗이 어떤 모습으로 자라날지는 그들에게 달린 몫이다. 나는 버려진 나무에게 붕대를 감아준 아이와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를 알게 된 아이의 작은 날개 짓이 언젠가 아름다운 바람이 되어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나의 작은 날갯짓이 그들의 날갯짓에 필요한 바람을 만들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앞에서 스스로에게 물은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릴 차례가 된 것 같다.
나는 스스로를 ‘사랑을 잃어버려 마음이 공허한 세대’라고 여겼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사랑은 내안에 있었다. 다만 나누지 않았기 때문에 잃어버린 듯 착각을 한 것뿐이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주고받은 많은 나눔 씨앗들은 순수, 배려 등등 나누자면 다양한 종류지만 이들을 하나로 묶으면 사랑이다.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럴 것이다. 특히, 현대인들은 ‘자신’만을 중요시한다. 자신에게 당장 눈앞에 큰 만족감을 주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갈구하고, 쟁취하며 철저히 자기 방어적이고 자기중심적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나눔이라는 행위가 물건에만 한정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가장 필요한 것이야 말로 ‘나눔’이다. 사회적 소수자로 느껴지는 이들도 다른 이들과 함께 사회를 구성하는 소중한 존재다.
누구라도 사회적 약자들을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권리는 없다. 모두가 함께 나눈다면 오랜 시간 외면당했던 그들 역시 그들을 필요로 곳에서 빛을 발할 것이고 그들의 사랑 또한 아름답게 퍼질 것이다.
작은 나눔의 힘이란 이런 것이다.
 

공유하기공유하기